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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지의 문화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2010.12.09. 경주 외동읍

토함 2010. 12. 30. 20:11

 

 

 

 

 

 

 

 

 

 

 

 

 

 

 

 

 

 

 

<참고> 시우도(심우도)란?


선종화(禪宗畵) 화제 가운데 하나.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심우도(尋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한다. 대개는 소와 소치는 동자가 등장하며 때로는 소와 스님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다음 백과>

 

 

 

 

 

 

 

 

 

(01) 국보 제81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慶州 甘山寺 石造彌勒菩薩立像)

 

소재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한 해에 그는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과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머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볼이 통통하여 원만한 인상이다. 목에는 2줄의 화려한 목걸이가 새겨져 있고, 목에서 시작된 구슬 장식 하나가 다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오른쪽 겨드랑이를 지나 오른팔에 감긴 채 아래로 늘어져 있다. 허리 부근에서 굵은 띠장식으로 매어 있는 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발목까지 내려오고 있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배(舟) 모양이며, 3줄의 도드라진 선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였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와 활짝 핀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광배 뒷면에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불상을 조각하였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만들어진 시기와 유래를 알 수 있다. 돌로 만들었음에도 풍만한 신체를 사실적으로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부터 새로이 유행하는 국제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진 및 해설 : 문화재청>

 

 

 

 

 

 

 

(02) 국보 제82호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 甘山寺 石造阿彌陀如來立像)

 

소재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후 그는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불상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으로 지정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석조아미타불입상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체는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지만,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부처님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온 몸에 걸쳐서 U자형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목에는 한번 뒤집힌 옷깃을 표현했는데 이는 신라 불상의 특징으로, 불상의 전체적인 형태와 함께 불상을 박진감있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불신 뒤의 광배(光背)는 배(舟) 모양이며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새겼다. 광배 안에는 3줄의 선을 도드라지게 새겨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별하고 있으며, 몸광배 안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와 활짝 핀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뿐 아니라, 광배 뒤의 기록에 의해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진 및 해설 : 문화재청>

 

 

 

 

 

 

 

(03) 시도유형문화재 제318호 (경주시)

      감산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甘山寺石造毘盧舍那佛坐像)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6-2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감산사에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감산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18년(719)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과 국왕 및 그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 불상은 얼굴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어깨가 각이 지고 무릎의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가슴 중앙보다 약간 아래쪽에 띠매듭이 조각되어 있으며, 가슴 앞에 올린 두 손은 파손되었지만 자세로 보아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쥔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비로자나불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조각기법으로 보아 절의 창건 당시이거나 그로부터 가까운 시기, 즉 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진 및 해설 : 문화재청>

 

 

 

 

 

 

 

(04) 문화재자료 제95호 (경주시)

      감산사지삼층석탑(甘山寺址三層石塔)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5

 

감산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65년 다시 세웠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이나, 현재 탑신의 2·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위로 치켜올라 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탑의 일부분을 잃어버려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아쉽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설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