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으로/이런 이야기가 좋아요

억새 / 2010.10.03. 경주 인왕동

토함 2010. 10. 4. 19:09

 

 

 

 

몰라

 

                                                                       - 고증식(1959~ )


왜 다 헐리고 없는지 몰라

고향집 지척에 두고

그렇게 발걸음 한 번 하기 어렵더니

무슨 날만 되면 지병처럼 쿡쿡

꿈속을 달려와 찔러대기도 하더니

맘먹고 찾아온 추석날 아침

왜 묵은 콩밭으로 변해 버렸는지 몰라

낡아가는 지붕 아래

늙은 홀아비 혼자 산다고도 하고

홀어미 한숨으로

손주놈 하나 붙들고 산다는 풍문만

잡풀처럼 무성하더니

어릴 적 놀던 마룻장 떨어지고

왜 기왓장 쪼가리만 뒹구는지 몰라

몰라 정말 몰라

그리운 것들 왜 빨리 무너져 내리고

나는 늘 한 발짝 늦는 것인지



추억은 항상 감미로운 노래로 우리를 유혹하네. 그것이 궁핍이든 실패든, 이때 궁핍은 나의 힘이 되네. 실패도 나의 힘이 되네. 우리는 모두 누구인가의 추억의 힘이 되네. 시간의 뼛물이 우러나는 곰국 같은 시, 그 뽀얀 뼛국물 속에 온갖 울음이며, 웃음, 죽음 같은 존재의 영양소들이 들어 있는 시, 그런 시를 기다리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