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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는 얼굴무늬 수막새(人面文 圓瓦當) / 2012.01.12. 국립경주박물관

토함 2012. 1. 12. 21:39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는 얼굴무늬 수막새(人面文 圓瓦當)는 신라 또는 경주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이 막새기와는  '천년의 미소'로 잘 알려진 이미지이다.

 

 

 

 

 

 

 

 

 

 

 

 

 

* 아래 게시된 해설은 다음 '오픈지식'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히 설명한 내용이므로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 신라의 토기 -얼굴무늬수막새 (人面文圓瓦當) 출처 바로가기

 

 

얼굴무늬수막새 (人面文圓瓦當)

현재지름 : 11.5 cm / 지름 : 14.0 cm

 

신라시대 수막새 기와의 무늬는 연화무늬[蓮華文]이 대부분이며, 보상화(寶相華), 당초(唐草), 천인(天人)과 문자(文字)가 있는 것도 있어 실로 다양하다. 여기에 소개코자 하는 영묘사터[靈廟寺址] 출토 얼굴무늬 수막새는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늬들과 달리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람의 얼굴을 막새기와에 쓴 것으로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수막새 1점과 황룡사지 출토의 대형(大形) 망새가 있다. 그러나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것은 수막새에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제작된 지역이 다르며 작품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황룡사지 출토 치미에 새겨진 얼굴무늬는 비록 수막새에 된 것은 아니지만 출토 지역이 같고 제작수법과 제작 연대가 비슷한 것 등으로 볼 때 상통되는 점이 많다. 이 기와는 지름 14.0cm로 보통 크기이며, 비교적 두터운 주연대(周緣帶) 안쪽의 둥근 공감에다 눈,코,입, 양볼 만을 만들고, 귀,머리는 생략하는 등 얼굴의 특징을 강조하였다.
 
콧대는 오똑하며 그 좌우에는 행실형(杏實形)의 눈을 만들었는데 삼국말 석조불상의 눈과 흡사하다. 입은 얼굴 왼쪽 턱이 결실되어 확실한 모양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오른쪽 볼이 왼쪽 볼보다 튀어나온 점과 그 아래쪽 입 모양으로 보아 수줍음이 흡뿍 담긴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굴의 표면을 깨끗하게 고르지 않았으면서도 천진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기와로 사용되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데, 뒤쪽에 수키와를 접합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제작 연대는 얼굴의 전체적인 형태나 분위기가 남산 장창곡(長倉谷) 출토 삼존석불의 협시보살상과 유사한 점과 주연부에 연주문이 없이 돌출되어 있는 점, 황룡사지 출토 치미의 얼굴무늬와 관계 등을 볼 때 삼국말 무렵[7세기]이라 생각된다. 이 기와가 발견된 것은 일정 때의 일이며, 발견장소로 알려진 흥륜사지는 이후의 연구성과에서 신라시대의 흥륜사가 있던 곳이 아닌 영묘사지로 밝혀졌다. 발견 직후 학계에 널리 알려진 이 기와는
광복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에 당시 경주박물관의 박일훈(朴日薰) 관장이 여러 곳에 소재를 수소문하던 중, 일본 후쿠오까현[福岡縣] 북구주시(北九州市)에 살고 있는 田中敏信씨가 소장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 박관장은 전중씨에게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얼굴무늬 수막새라는 점을 감안하여 경주박물관에 기증할 것을 편지로 문의하였고 얼마 후인 1972년 10월 14일 다나까 씨가 방한하여 우리 관에 기증함으로써 경주1564번으로 국고귀속되었다. <출처 : 다음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