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73호 신라일성왕릉(新羅逸聖王陵)
소재지 경북 경주시 탑동 산 23
신라 7대 일성왕(재위 134∼154)의 무덤이다.
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하여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
왕릉은 높이 5.3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둘렀으며,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무덤 앞 2단 축대는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경주(慶州) 남산(南山) 서록(西麓)에 위치하여 있는데,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봉토자락에는 호석(護石)을 받쳤던 자연석(自然石) 받침돌이 몇 개 나와 있다. 봉분(封墳) 앞에는 한 단 낮아져 석상(石床)이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다시 석축(石築)을 쌓아 단(段)을 설치하였으나 모두 후대(後代)에 축조한 것이다.
이 고분(古墳)은 규모면에서 일반 서민층의 것은 아니지만 위치(位置)와 봉분(封墳) 형식으로 보아 신라 초기인 일성왕(逸聖王)의 재위시기와는 동떨어진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으로 추정되며, 문헌에도 일성왕(逸聖王)의 장지(葬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신라 제7대 왕(王)인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재위(在位) 134-154)은 재위기간에 북쪽 변방으로 침입하는 말갈(靺鞨)을 막았고, 또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업을 권장하였으며, 민간에서 금(金)·은(銀)·주옥(珠玉)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 검소한 생활을 권장하였다고 한다. <해설: 문화재청>
경주에서 포석정 못미쳐 나정쪽으로 좌회전한다. 조금 더 가다보면 일성왕릉 가는 길과 창림사지 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두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갈림길에서 보면 당간지주(남간사지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이 길로 한참 가다가 좌측 산기슭에 창림사지가 있다. 일성왕릉을 가려면 똑바른 길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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