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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0호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 두번째 / 2009.11.15. 경주 구황동

토함 2010. 2. 2. 15:11

 

 

 

'경주 분황사, 138m 회랑 갖춘 거대 사찰'(조인스 2008.12.12)


지금은 모전석탑(模塼石塔·돌을 깎아 만든 벽돌로 쌓아올린 탑)만 외로이 지키고 있는 경주 분황사 터.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분황사는 신라 최고의 사찰 황룡사와 어깨를 겨룰 만큼 거대한 사찰이었다.

 

 

 

 

 

 

 

 

 

 

국보  제30호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

 

소재지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2

 

이 석탑(石塔)은 돌을 흙으로 구워 만든 전돌(塼石)처럼 깎아 만들어 쌓은 석탑으로, 전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 부른다.

기단은 야석(野石)을 쌓아올린 단층으로 되어 있어 전탑 기단의 통식(通式)을 보여 주며, 그 중앙에 1층 탑신을 받치기 위하여 화강암으로 한 층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길이 약 30~45㎝, 두께 약 4.5~9㎝의 진회색 안산암을 잘라 각층 옥신과 옥개부를 쌓아 올렸기 때문에 외형상 전탑과 같다.

탑이 세워진 것은 분황사(芬皇寺) 창건(創建)과 같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으로 보고 있으며, 3층으로 되어있는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것으로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리 당시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舍利函) 속에서 각종의 옥류(玉類), 가위, 은바늘 등과 함께 숭녕통보(崇寧通寶), 상평오수(常平五銖) 등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중국(中國) 주화(鑄貨)가 발견됨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리장치(舍利裝置)에 추가하여 고려시대에서도 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동전을 넣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넓은 방형(方形)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1층탑신(一層塔身)의 4면에 화강암(花崗岩)으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양편에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라고도 하는 인왕상(仁王像)을 조각(彫刻)하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은 신라조각의 걸작품에 속한다. <해설: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