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으로/이런 이야기가 좋아요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드라이버에게 선물을 주다 / 2011.10.23. 포항공대 주변 도로

토함 2011. 10. 23. 21:03

 

 

 

 

 


‘길갓집’

                                                         -장철문 (1966~ )


처마 밑에 빗방울들이 물잠자리 눈알처럼 오종종하다

들녘 한쪽이 노랗다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세 그루

빗방울 몇이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남은 물방울들이 파르르 떤다

은행잎이 젖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툭

떨어져 내린다

반나마 깔려서 들녘 한쪽을 다 덮었다.



‘나는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았지’라고 노래한 이가 아마 아폴리네르다. 보통사람의 눈에 안 들어오고 그냥 스쳐가 버리는 것을 시인은 본다. 시인은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을러서 세상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세상의 틈이나 저편을 관조하게도 되는 것이다. 처마 끝의 빗방울, 은행잎의 빗방울. 요런 작은 것을 발견하면서, 발견한 작은 풍경들에서 시인은 미적 쾌감을 느낀다. 벌판을 배경으로 서 있는 길갓집. 때는 가을이고 해질녘일 것이다. 방금 전 비가 그쳐 하늘은 맑게 개고, 그 집 앞 은행나무들은 비에 씻겨 한층 깨끗할 것이다. 들녘 저편에서부터 깨끗한 노을이 내리깔리고….  <황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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