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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과 석조사천왕상(보물 제318호) / 2011.10.09. 청도 운문사

토함 2011. 10. 23. 23:36

 

 

 

 

보물 제317호  운문사석조여래좌상(雲門寺石造如來坐像)

 

소재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운문사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로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에 사천왕석주와 같이 모셔져 있다.

 

머리는 나발(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 모양에 육계(상투 모양의 머리 장식)가 솟아있다. 얼굴은 크기에 비해 눈과 입술이 작게 표현되었고, 불상 전체에 두껍게 칠해진 호분(조가비를 태워서 만든 흰가루)때문에 각 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밋밋한 인상을 준다. 법의는 양 어깨를 다 가린 통견의이며, 손은 악귀를 쫓는 항마촉지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불상을 받치는 육각형 대좌와 광배(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장식)가 온전히 남아 있는데, 광배 가운데에는 연꽃이 있고, 테두리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모셔져 있는 높이 0.63m의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분명하다. 신체 비례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데, 가는 눈썹·작은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평판적인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그 안에 비스듬히 표현된 내의이 보인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 놓여져 있는데, 손이 작고 표현이 섬세하지 못해 투박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투박한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형식적인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매우 특이한 양식으로 주목된다. 맨 윗부분은 평면 타원형으로 14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6각형이며, 아랫부분은 긴 6각형에 18개의 연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겉옷 안에 표현된 속옷,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 보물 제318호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淸道 雲門寺 石造四天王像)

 

 

 

보물 제318호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淸道 雲門寺 石造四天王像)

 

소재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운문사

 

사천왕석주는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이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가 큰 반면, 돋을새김을 뚜렷하게 하지 않아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체구도 약해보이고 얼굴 생김새도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시대가 내려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880년에 만들어진 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사천왕상이나 철감선사탑(澈鑑禪師塔) 사천왕상과 비슷하지만, 보다 크고 띠주름도 굵어지는 등 형식화된 면이 있어서 8세기 석굴암의 사천왕상과 비교하여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후삼국시대인 900년경을 전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