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8호 고선사지삼층석탑(高仙寺址三層石塔)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을 조립식으로 짜 맞추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에서 또렷이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고선사< 高仙寺 >는 통일신라< 統一新羅 > 초기< 初期 >에 창건된 사찰< 寺刹 >로서 원효대사< 元曉大師 >가 주지< 住持 >로 있었던 곳으로 이름난 절이다. 이 석탑은 원래 경주시 암곡동< 暗谷洞 > 고선사터< 高仙寺址 >에 있었던 것을 경주고도종합개발계획< 慶州古都綜合開發計劃 >의 일환으로 실시된 덕동< 德洞 >댐공사로 인하여 수몰< 水沒 >됨으로써 1975년 이곳으로 옮겨 세워 놓은 것이다. 옥개석< 屋蓋石 >과 옥신석< 屋身石 >은 여러 개의 부재< 部材 >를 써서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 쌓아 올렸으나 3층탑신만은 하나의 부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사리장치< 舍利裝置 >를 하기 위한 사리공< 舍利孔 >과 찰주< 擦柱 >를 세우기 위한 찰주공< 擦柱孔 >을 마련하려는 배려였음을 해체복원시< 解體復元時 >에 알게 되었다. 통일신라 초기의 신라석탑< 新羅石塔 >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현재 높이는 10.2m이다. <해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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