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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동최씨 고택 2 / 2010.02.18. 경주

토함 2010. 3. 11. 14:17

 

 

 

중요민속자료 제27호  경주교동최씨고택(慶州 校洞 崔氏 古宅)

 

소재지  경북 경주시 교동 69

 

법주(法酒)를 가양(家釀)하던 최부자집으로 계림향교(鷄林鄕校) 이웃에 있는데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요석궁(瑤石宮)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시대의 석조물(石造物)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석교재(石橋材)나 최씨댁내(崔氏宅內)의 아름다운 석조물들은 고급스러운 작품들이다.

구대(九代)째 세거(世居)하는 집이라 하며 1700년경에 개기(開基)되었을 것이라고 집주인은 주장한다. 넓고 깊은 골목겸 마당을 들어가게 되면 솟을 대문이 앞에 있다. 수없는 달구지에 벼를 실어들이자면 이만한 마당이 있어야 하였을 것이다. 대문 행랑채는 작은 방과 큰 고간(庫間)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다. 맞은 편에 사랑채가 있었는데 1970년 11월에 불이나서 지금은 터전만이 남아있다. 마당의 동편으로 가면 거대한 곡간(穀間)이 있다. 천석이라도 넉넉히 쌓아둘만한 규모이다. 현물경제체제에서 집이 자꾸 커져야 하였던 것은 물화(物貨)를 저장하는 수장고(收藏庫)의 증대때문이었다. 이 집도 그런 성향이 짙은 집이어서 곳곳에 고간(庫間)이 마련되어 있다.

안채는 트인 ㅁ자형이나 날개집이라고 속칭되는 유형에 속한다. 동일 유형중에서도 이 집은 약간 복잡한데 몸채가 ㅁ형인 것은 기본이고 그 앞쪽에 ㄱ자형의 사랑채와 一자형의 중문채가 복합하여 일곽을 이루었다. 주축선(主軸線)을 설정하고 보면 중문(中門)은 동측(東側)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내외벽(內外壁)이 시설된 중문의 우측은 4간의 고간(庫間)이고 좌측엔 1간이 있는데 이는 사랑채에 이어지기 위한 접속의 공간을 이용한 것이다.

사랑채는 ㄱ자형에 몸채쪽으로 1간이 이어진 특이한 평면구성인데 ㄱ자형으로 꺾이어 전출(前出)한 부분에 내루(內褸)가 있다. 이 집은 구성된 비율로 보아 욱실보다는 양청(凉廳)이 넓은 남방성향(南方性向)을 보이고 있다. 중문에 들어서면 방정(方正)한 내정(內庭)이다. 장독대가 한 쪽에 있다. 중부지방에서 후원에 장독대를 두는데 비하면 영남지방에서는 내정(內庭)에 장독대를 두는 예가 흔하다. 중문 맞은편이 몸채의 대청이다. 안방은 남향하고 3간이며 앞퇴가 열렸다. 그 왼편에 대청이 널찍하다.

보통의 집은 안방이 좌측에, 대청이 우측에 있으나 이집은 좌우가 바뀐 맛을 보였다. 그래서 부엌이 ㅁ형의 동변(東邊)에 있다. 부엌 남쪽으로 또 방이 있고 광이 있다. 대청 서편에 건넌방 2간이 있고 다음이 대청, 이어 앞퇴가 있는 2간의 방으로 되면서 ㅁ형의 서변(西邊)이 완성된다. 방과 그 남쪽의 사랑채와의 사이에 협문(夾門) 1간이 있다. 안채의 서북쪽에 일곽(一廓)을 별설(別設)한 가묘(家廟)가 있다. 남쪽으로 길을 반듯하게 낸 것이 인상적이다.

사랑채의 앞쪽, 서편에 치우쳐 동향(東向)한 별채가 있다. 역시 마루가 방보다 넓게 구조된 건물이다. 사랑채가 불탄 이후로 바깥사랑채 처럼 쓰이고 있다. 별채 남쪽 후미진 자리에 외측이 있고 안채의 중문간 동쪽끝 외진 곳에 내측이 있다. 안채 뒤편에 화계(花階)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해설: 문화재청>

 

 

 

 

 

 

 

 

 

 

 

 

 

 

 

 

 

 

교동 최씨댁의 곳간이 보인다. 곳간에 너무 많은 곡식이 쌓이지 않도록 잘 경영해 왔기에 오늘 날에도 본보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곳간 앞에 있는 '육연과 육훈'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부자들이 경계하여야 할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