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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 2009.12.08. 경주 낭산(狼山)

토함 2010. 1. 7. 10:50

 

 

 

사적  제182호   신라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소재지  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狼山)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주 시가지 동쪽에 있는 낭산(狼山)에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23.6m, 높이 6.8m이다. 봉분 밑에는 30-60㎝ 크기의 깬돌 2, 3단으로 호석(護石)을 둘렀고, 그 외부에 호석의 높이만한 크기의 돌을 기대어 받쳐놓아 무열왕릉과 같은 호석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난간(欄干) 구조물은 보이지 않고, 기타 장식물도 배치되지 않았다. 전면에 보이는 석상(石床)은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在位) 632-647)은 본명이 김덕만(金德曼)이며 진평왕(眞平王)의 장녀(長女)로 신라 최초의 여왕(女王)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백성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에는 당(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정에 힘썼다. 634년 년호(年號)를 인평(仁平)으로 고쳤으며, 자장(慈藏)의 청에 의해 645년에 황룡사 구층탑(皇龍寺 九層塔)을 세우고, 분황사(芬皇寺)와 첨성대(瞻星臺)를 건립하는 등 문화발전에 힘썼다. 또한 김유신(金庾信)과 김춘추(金春秋)의 보필로 선정을 베풀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647년 1월에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왕의 유언에 따라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지기삼사(知幾三事)로 유명한 일화(逸話)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으로 죽을 날을 미리 예언하고 자신이 죽으면 이천(利天) 가운데 묻어달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그곳이 어딘지 몰라 물으니 왕이 낭산(狼山) 남쪽이라고 하였다. 예언한 날에 왕이 돌아가자 예언대로 낭산(狼山) 남쪽에 장사지냈다. 문무왕(文武王) 때에 이르러 능(陵) 아래쪽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으니 불경(佛經)에 사천왕(四天王) 위에 이천(利天)이 있다고 한 것과 일치되어 왕(王)의 영성(靈聖)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해설: 문화재청>

 

 

 

 

 

 

사적  제163호  경주낭산(慶州狼山)

 

소재지  경북 경주시  보문동 214-2

 

누에고치모양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낮은 구릉을 이루는 이 산은 신라 실성왕 12년(413)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성역으로 보존되어 온 곳이다.

기록에는 ‘왕이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서린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이니 당연 복을 주는 지역이다. 이제부터는 낭산의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7세기부터는 불교의 성스러운 산으로 왕실에 복을 주는 장소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만든 여왕의 능을 비롯하여 신라 향가의 현장인 사천왕사터, 문무왕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 바위에 부처를 새긴 마애불, 구황리 삼층석탑 등 신라 유적이 많이 있다.

 

남북으로 길게 마치 누에고치처럼 누어 낮은 구릉< 丘陵 >을 이루고 있는 이 낭산은 신라< 新羅 > 실성왕< 實聖王 > 12년(413) 8월에 산에 구름이 일어나 누각< 樓閣 >과 같이 보이면서 향기가 매우 짙게 퍼져 오랫동안 계속됐다. 이것은 하늘에서 신령< 神靈 >이 내려와 노는 것으로 여기고 이때부터 낭산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했고, 성역< 聖域 >으로 보존받아 왔다. 이곳에는 선덕여왕< 善德女王 >의 유언에 따라 만든 여왕의 능을 비롯해서 사천왕사지 < 四天王寺址 >, 문무왕< 文武王 >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 陵只塔 >, 바위에 새긴 마애불< 磨崖佛 >, 구황리삼층석탑 < 九黃里 三層石塔 > 등 많은 신라유적이 있다.

<해설: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