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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흥덕왕릉3(돌사자) / 2009.12.09. 경주 안강읍

토함 2010. 1. 10. 21:48

 

 

 

사적 제30호 신라 흥덕왕릉 (新羅興德王陵)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 42

 

흥덕왕은 신라 제42대 왕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경휘(景徽)이다. 그는 이손(伊飡), 상대등을 거쳐 헌덕왕(憲德王) 14년(822)에 부군(副君)이 되었으며 826년 즉위하자 당에 사신을 파견, 당 문종(文宗)으 로부터 신라왕에 책봉되었다. 그는 장보고(張保皐)를 청해진대사로 삼아 해적의 출몰을 막게 하였다. 봉분은 비교적 큰 것으로 봉분 밑에는 판석을 세워서 호석(護石)을 삼고 판석과 판석사이에 탱주(撑柱)를 세워 판석을 고정하도록 하였으며 위에는 갑석(甲石)을 얹었다. 탱주에는 각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고 호석 주변에는 방사형으로 박석을 깔고 주위에 난간을 돌렸으나 난간기둥이 많이 없어졌다. 난간기둥에는 상하 두개의 원공(圓孔)을 뚫어서 관석(貫石)을 끼게 되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봉분 사우(四隅)에는 각각 석사자 한마리씩 배치하고 전방 좌우에 문인석 1쌍과 무인석 1쌍이 있다. 전방에 석화표(石華表) 1쌍이 있고 능전방좌측(陵前方左側)에는 능비를 세웠던 귀부(龜趺)가 있으나 손상이 심하고 탑신과 이수는 없어졌다. 표식물(表飾物)의 양식 및 배치로 보아 성덕왕릉(聖德王陵)과 원성왕릉(元聖王陵)을 모방하였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장지(葬地)는 안강(安康) 북쪽 비화양(比火壤)에 왕비가 와 합장하였다고 하는데 현위치와 대체로 합치되고 왕비가 흥덕왕 1년에 돌아갔으므로 이때 왕릉이 축조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문화유적총람>

 

 

 

 

 

 

 

 

 

 

 

 옆 모습을 한번 더 살펴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