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42호 서악리고분군(西岳里古墳群)
소재지 경북 경주시 서악동 750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바로 뒷편의 구릉에 분포하는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이곳의 무덤들은 경주분지의 대형 무덤과 비슷한 형태로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 시설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봉분이 거대한 점, 자연돌을 이용해 둘레돌을 두른 점 및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으로 보아 안에는 나무로 된 네모난 방을 만들고 그 위와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형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무덤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뒷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해 볼 때, 풍수지리사상의 영향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경주 서악리 고분군은 서악동 무열왕릉의 바로 뒤편 구릉 능선상에 분포되어 있는 대형고분 4기를 가리킨다. 여기의 고분들은 경주분지에 있는 대형고분과 비슷한 크기의 분구이며, 형식은 원형봉토분이다. 맨 위에 있는 1호분부터 맨 아래에 있는 4호분의 분구들은 각기 2∼4m의 사이를 두고 분포되어 있다.
1호분은 저경 39m·높이 8m이고, 분구자락에는 지면 위 1.7m 부위에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가 돌려 있는데, 남면과 북면에 약간씩 노출되어 있다. 2호분은 저경 40m·높이 8m이고, 분구의 지면 위 3m 높은 부위에 축대의 일부로 보이는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다. 3호분은 저경 60m·높이 12m이고, 분구자락에 지면으로부터 높이 1.5m 부위에 역시 축대의 일부로 보이는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다. 4호분은 저경 51m·높이 10m이고, 분구자락에 지면으로부터 2m 부위에 비스듬히(사립(斜立)) 세워진 자연석이 노출되어 있다.
이들 4기의 고분은 아직 발굴조사한 일이 없어 내부 매장주체시설의 구조형식에 관하여 확실히는 알 수 없다. 다만 분구가 특별히 거대한 점, 분구자락에 축대로 보이는 자연석은 호석용 토류석열이라는 점,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 등으로 우선 적석목곽분 형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일면에서 보면, 적석목곽분은 일단 지증왕때까지 경주분지에 축조하고, 그후로는 분지를 벗어난 주변의 산록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또 보문리 부부총에서와 같이 초기 석실분의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고분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仙桃山)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뒤 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풍수지리사상의 영향하에 선지(選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분의 주인공에 대한 견해도 있는데, 1호분은 법흥왕릉(法興王陵)·2호분은 진흥왕릉(眞興王陵)·3호분은 진지왕릉(眞智王陵)·4호분은 문흥대왕릉((文興大王陵), 뒤에 추존) 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해설: 문화재청>
내려오면서 고분군을 뒤돌아 보았다. 무덤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신라 태종무열왕릉의 뒷쪽에서 소나무숲 사이로 능을 담았다.
무열왕릉의 앞쪽에서 다시보니 또 카메라에 손이 간다.
신라 태종무열왕릉비와 무열왕릉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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