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8호 경주임해전지(慶州臨海殿址)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26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서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임해전(臨海殿)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많이 나타나는데 군신(君臣)이 모여 잔치하는 기록이다. 경순왕(敬順王) 5년(931)에는 고려(高麗) 태조(太祖)를 위해 잔치를 베푸는 곳도 임해전이다.
임해전이 어디 있는가를 확실하게 명시하는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경주조(慶州條)」의 기록이다. "안압지는 처주사 북에 있다. 문무왕이 궁내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어 무산 12봉을 상징하고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를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터가 있는데 초석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하였다.(안압지재천주사북문무왕어궁내위지(雁鴨池在天柱寺北文武王於宮內爲池) 적석위산상무산십이봉(積石爲山象巫山十二峯) 종화훼양금(鐘花卉養禽) 기서유임해전(其西有臨海殿) 기초체재전무간(基礎砌在田畝間))안압지(雁鴨池) 서쪽의 건물지(建物址)는 신라 동궁(東宮)의 건물터임이 발굴조사 결과 입증되었다.
안압지와 동궁지의 발굴조사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3년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하였다. 안압지라는 못의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안압지가 신라 문무왕(文武王)때 조성된 못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이며 발굴조사 결과 신라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신라의 원지(苑池)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문무왕 14년(674) 기록에 보면 "궁내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와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 하였고 문무왕 19년(679) 기록에 "동궁(東宮)을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기와에서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라는 명문과 [조로이년(調露二年)]이라는 명문이 나와서 의봉사년(儀鳳四年)은 당(唐)나라 연호로 문무왕 19년(679)에 해당되고 조로이년(調露二年)은 문무왕 20년(680)에 해당되어 문무왕 19년에 동궁을 창건한 기록을 입증하였다. 이를 보면 임해전은 동궁속에 있는 건물이며 잔치하는 건물이다. 안압지는 동궁의 원지(苑池)로서 동궁의 건물을 못가에 건립하기 위해서는 못을 먼저 팠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굴결과 동궁의 건물은 안압지 서쪽에 남북 축선으로 3동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동궁의 건물배치를 알 수 있게 집터에 초석을 복원하여 두었다.
현재 안압지(雁鴨池) 서쪽 호안(護岸) 위에 누각(樓閣)과 정자(亭子)같은 3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 건물의 평면과 주칸은 신라의 건물 그대로이다. 동궁의 건물사이로 물이 흘러가는 석조(石造)의 수로(水路)를 설치하여 특이한 조경을 하였다.
안압지는 동서 약 190m, 남북 약 190m 정방형 공간 속에 4,730평의 못을 조성한 것인데 서쪽과 남쪽은 건물이 서고 북쪽과 동쪽은 담이 막아서서 아늑한 원지공간(苑址空間)을 조성했던 것이다. 동궁의 건물이 선 서쪽 호안과 남쪽 호안은 직선을 이용한 호안이다. 무산(巫山) 12봉이 조성된 북쪽 호안과 동쪽 호안은 절묘한 굴곡으로 해안선 같이 만들었다. 연못 속에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한 세 섬이 조성되어 있다. 동궁의 건물이 선 서쪽 호안의 높이는 5.4m쯤 되고 남쪽과 북쪽과 동쪽의 호안과 세 섬의 호안 높이는 모두 2.1m쯤 된다. 연못 전체의 호안길이는 1,285m(섬호안 포함) 이다. 원지(苑址)의 호한가와 조산(造山) 및 삼신도(三神島)에는 천수백개의 괴석(怪石)을 배치하고 있다. 특히 서쪽 호안에는 괴석을 설치하기 위한 괴석단을 조성하였다.
수입시설(水入施設)은 못의 동남쪽 호안 귀퉁이에 있는데 2단의 폭포로 떨어지게 하였고, 수출시설(水出施設)은 북쪽 호안에 있는데 물막이를 상하로 설치하여 못의 수면을 조절할 수도 있게 하였다. 못바닥에는 나무로 정자(井字)틀같은 것을 설치하여 한정된 공간에 연(蓮)을 심고 바닥에는 강회를 다지고 자갈을 깔아 수초가 나지 못하게 하여 바다같이 넓게 보이게 하였다. 못속에서는 신라의 생활용기, 불상, 건축부재, 목선(길이 6.2m, 폭 1m, 높이 35cm의 카누같은 배), 산양, 사슴, 말, 돼지, 거위 등의 동물뼈 등이 출토되었다. 안압지(雁鴨池)는 평지에 조성한 축경식(縮景式)의 조원이다. 가까운 거리인데, 아득하고 유연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삼신도나 무산(巫山) 12봉(峯)을 조성한 것을 보면 신선사상과 연관성이 있고 신선의 세계를 조영(造營)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안압지(雁鴨池)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땅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변형되지 않고 통일신라의 고유한 조경양식을 원형대로 잘 보존하고 있는 동양의 명원중 하나이다. <해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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