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40호 정혜사지십삼층석탑(淨惠寺址十三層石塔)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을 그리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13층이라는 보기 드문 층수에, 기단부 역시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비교적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층을 크게 부각시킨 후 2층부터 급격히 줄여나간 양식으로 인해 탑 전체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 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서 원 위치에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기단은 단층 토축(土築)이다.
토대(土臺)의 상면에 1단의 석축이 마련되고 그 위에 4매석(四枚石)으로 구성된 높직한 2단의 방형(方形)의 괴임이 설치되었으며, 그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받고 있는데, 이 2단의 괴임돌은 곧 기단부 갑석(甲石) 상면의 괴임대 수법으로서 현재는 마치 지대석(地臺石)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탑신은 13층의 옥신(屋身)·옥개석(屋蓋石)으로 건립되었는데, 특히 초층의 옥신과 옥개가 큰 규모로 조성되고, 그 위의 2층부터는 아주 작아졌다. 초층 탑신은 네 귀에 방형의 석주(石柱)를 우주(隅柱)로 세우고, 우주 안으로 역시 1석씩으로 된 석주와 인방과 하방을 걸쳤다. 초층 옥개석은 개석과 하면 받침부가 별석(別石)인데 3단이다. 초층 옥개석 위에 1매 판석으로 된 1단의 괴임돌을 놓아 2층 이상의 탑신을 받고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옥신·옥개석이 급격히 작아져서 마치 초층에 얹혀 있는 상륜부(相輪部)와도 같이 보인다. 옥신·옥개석이 각기 1석씩으로, 특히 탑신은 작아져서 옥개석 위에 마련된 탑신 괴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는데, 일반적 형식이다.
이 석탑은 보기 드문 13층의 탑이고, 2층 이상의 체감비율이 특이하며 초층 탑신 4면의 감실(龕室)과 아울러 기단부 축조가 일반적 양식에서 벗어난 특수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해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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