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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표암(慶州瓢巖)과 표암재(瓢巖齋) / 2010.01.08-12. 경주 동천동

토함 2010. 1. 14. 15:52

 

 

 

시도기념물 제54호(경주시)  경주표암(慶州瓢巖)

 

소재지  경북 경주시  동천동 507-7외 49필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B·C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후 B·C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같이 표암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가 조선 순조 6년(1806)에 세웠고, 1925년에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표암은 『박바위』, 『밝은 바위(光明巖)』를 뜻한다. 이곳은 신라6촌(新羅六村) 가운데 근본(根本)이 되는 밑돌부(及梁部)라는 부명(部名)이 붙여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시조(始祖) 이알평공(李閼平公)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다. 서력 기원전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열고 신라건국(新羅建國)을 의결했으며, 그후 서력 기원전 57년에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의 혈맥(血脈)의 근원지(根源地)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光明理世)'라는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發祥)을 보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遺墟碑)가 조선(朝鮮) 순조(純祖) 6년(1806)에 세워졌고 1925년에는 표암재(瓢巖齋)가 건립된 뒤 전사청(典祀廳), 내외삼문(內外三門), 경모대비(景慕大碑), 천강지(天降地) 등이 건립되어 더욱 그 뜻을 기리며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봉행하고 있다. <문화재청>

 

 

 

 

 

 '표암재(瓢巖齋)'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담 밖에서 셔터를 눌렀다.

 

 

 

 

 

 

'표암재(瓢巖齋)' 앞에서 '신라탈해왕릉(新羅脫海王陵)'이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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